아리랑.
아라랑은 어떻게 태어났나 ..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아라랑은
1926년 아라랑 영화의 주제음악이다 .. 즉 영화음악이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아리랑을 편곡한것이라고 하겠다
영화음악의 이전의 아라랑을 구아리랑
영화음악의 아라랑을 영화아리랑 또는 본조아리링 이라한다
서울 경기지역에서 불리어지고있는 아라랑은
강원도 지역에서 불렀던것을 서을 경기지역에 맞게 편곡한것이 구 아리랑 이다
학자들은 아리랑 유래를
강원도 ...서울 경기 ... 영화 아리랑 ... 각 지방아라랑.... 흐름을 말하기도한다
강원도 아리랑 / 아리랑 /밀량아리랑 진도아라랑 상주 아라랑 등등
1926년 밀량아리랑
1930년 진도아리랑은 김소희 박종기 명창이 일본으로 녹음하려가기도햇다
이 아리랑이 요즘처럼 메스컴이 발달되지도 않았던 시절에 조선팔도 전국각지에서
거이 비슷한 아리랑노래가 같은 불러질수가 있을까...... 라는 의문에
1865년 부터 1872년까지 약 7년간 조선시대의 건축으로
마지막 궁인 경복궁을 짖을때
강원도에서 벌목하고 그것을 서울로 운반하면서
그 동원된 강원도 사람들이 늘 불렸던 아리랑을 경복궁을 건축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동원된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각 지역에서 부르다가 그지역의 토착되면서
그지역의 아리랑으로 탄생하는것이라 할수있다
악보로 남겨진것은 미국인 헐퍼트에(1896) 의해서 체본되어 남겨저있으며
그체본의 제목은 THE COREA VOCAL 이라되도있고
쌀처럼 귀하게 여기는 노래라고 했다
아리랑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로 편곡되어 늘리 만주 시베리아 등까지 전파되었다
1920년부터 53년까지 아리라을 주제나 소제로 만든 연극이 10여편이나되고
1929년에 박진희연출 박승희; 원작의 아리랑이 상당히 인기있었다고한다
북한영화 아리랑 은 민족영화의 1호라고 칭하고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면에서 평가하고있고
난북한이 단일노래로 아리랑을 결정하는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는
1800년대에 각지역의 토착된 아리랑이 경복궁을 만들면서 서울로 전파되고
힘든 일꾼들을 위해서 연희가 열리곤햇는데 이대도 불러서 일하면서도 불러지고
서울 아리랑인 본조아리랑이 되고 각지역으로 전파되어
각지역에 걸맞는 아리랑이 만들어진것이라하겠다
이내용은 2013년 파월 한가위 특집으로 93.1 FM라듸오에서 3닐동안 방송내용을
듣고 요약해보았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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