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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왜구 격퇴로 하사된 성흥사

아지사리 2010. 3. 24. 10:26

왜구 격퇴로 하사된 성흥사

흥덕왕 51년(826~836)(필자주 : 흥덕왕 재위 10년 밖에 안 되므로 흥덕왕 즉위부터 쳐 보면 경문왕 6년 곧 서기 866녀이 된다)
왜구 10만여 명이 부산과 제포(웅천)에 침범하여 조야가 어지러워져 왕이 크게 두려워하고 중신들을 모아 대책을 물었으나 아무도 현명한 방책을 말하는 이가 없었다. 왕은 근심을 하며 자리에 드시니 꿈 속에 神人이 나타나서 말하되,
"왕이 나라 지리산의 산중에 '無染'이라는 和尙이 있으니 金山 寶蓋如來의 후신이라 불가사한 神力을 거느리고 다니므로 가히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구제할 인물이니라. 또 서남쪽에 산이 있어서 일러 '佛母'라고 하고 산명수려하고 상서로운 구름이 항상 떠서 참을 닦는 사람이 찾을 만한 곳이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느낀 바가 있어서 사람을 보내어 화상을 모셔 와서 분부를 내리시니 화상은 팔판산 鐵馬峯으로 올라가서 金錫杖을 재(嶺)에 꽂고 왼손으로 배를 두드리니 그 소리가 마치 포성처럼 진동하고 문득 金甲神將이 산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지라 왜구는 이것을 보고 놀라 물러가고 말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시고 무염화상을 國師로 봉하고 平章事 柳春雨를 시켜 그 은혜 갚음으로 九川洞 官南里에 절을 지어 聖興寺라 하고 寺田 360結과 寺奴 百戶를 하사하였다.
이렇게 창건된 성흥사는 뒤에 어떤 연고로 대장동 뒷산으로 옮겨졌고, 현재의 위치에 정착한 것은 세 차례나 옮긴 끝에 이루어졌다.

출처 : 진해웅천초등학교총동창회
글쓴이 : 59회 배권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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