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웅천내음

[스크랩] 우리 고장 알기 - 1

아지사리 2010. 3. 24. 11:29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경상도는 삼한 때에는 진한이 되고, 삼국 때에는 신라가 되었다.

고려 태조가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여 '동남도 도부서사' 제도를 두고, 사(司)를 경주에 두었다.

성종 14(을미)년에 경내를 10도로 나누어, 상주의 관할은 영남도로 하고, 경주와 금주위 관할은 산남도로 하였다.

그 뒤에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으나 합하여 '경상도'로 하였다.

 동남쪽에는 큰 바다가 잇고 , 서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하여 감음현 육십현(현재 경남 항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을 넘나드는 고개)에 이르고, 북쪽은 죽령을 경계로 하여 문경현 초점에 이르는데, 대구군(대구광역시)이

도 중앙에 있다. 동서가 3백 76리, 남북이 4백 48리이다.

관할은 유수부가 1, 대도호부가 1, 목이 3, 도호부가 6, 군이 15, 현령이 6, 현감이 34이다

 호수는 4만 2천 2백 27호로, 인구는 17만 3천 7백 59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2천 6백 30단 1명,

영진군이 3천 8백 76명,

선군이 1만 5천 9백 34명이다

                                                   

 

                                                             -중략-

 

 

 속현이 둘이니 웅신현(웅천지역)은 본디 웅지현인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의안군의 영현을 삼았다가,

고려 현종 9(무오,1018)년에 금주 임내에 붙였다.

완포현은 본디 고려의 완포향인데 뒤에 현으로 고쳤다(행암동에서 서쪽으로 창원시 삼귀동, 웅남동에서 상북동의 지귀마을까지의 범위).

 부곡이 둘이니 대산과 천읍(웅동지역)이다.

 

 

                                                            -중략-

 

 

 웅신의 성이 셋이니 '서, 주, 유'요,

들어온 성이 하나 있으니 '김'(금주에서 왔다)이며 ,

완포의 성은 하나니이니 '전'이요,

대산의 성은 하나이니 '전'이며, 천읍의 성이 하나이니 '공'이다.

 

 

                                                           -중략-

 

 

  역이 일곱이니 남역, 덕산, 금곡, 성법,적항, 대산신역, 웅신신역이다.

제포는 웅신현에 있다. 본부와 거리가 42리로 수군 만호가 수어한다.

 봉화가 여섯 곳이니 가덕도 응암은 부 남쪽에 있다.

남쪽으로는 성화야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웅신 사화랑산에 응한다.

성화야는 동쪽으로 평석성에 응하고, 북쪽으로 밀양 남산에 응한다.

사화랑산은 북쪽으로 창원 장복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완포현 고산에 응한다.

고산은 동쪽으로 웅신현 사화랑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창원 여포에 응한다.

 수락은 천읍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물이 갈리어 흐르는데, 전라도가 가물면 동쪽으로 합류하며,

경상도가 가물면 서쪽으로 합류하고, 두 도가 가물지 아니하면 동서로 갈라져 흘러,

고장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오는 해의 큰 물과 가뭄을 점친다.

 

 

                                         -진해와 웅천의 지리지- 에서 발췌

출처 : 진해웅천초등학교총동창회
글쓴이 : 52회 정이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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