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웅천내음

고향 내가 태워난 그곳을 보다

아지사리 2014. 8. 3. 19:17

 

고향 내가 태어난 그곳을 보다

이글은  경남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동아시아 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는 유장근교수님의 탐방내용을 복사한것입니다

 

 
[진해] 사진으로 보는 웅천지역 역사 탐방기 -제포진과 제포왜관

 

시민과 함께하는 역사 / 공공역사학을 위하여

2010/05/31 20:05

 

매립이 시작되는 내고향 웅천 제덕 괴정
 

 

 

 


   
 
이곳 사진은 제포진성 탐방 사진과 기록입니다. 이곳 향토사가이신 황정덕 선생의 저술에 따르면 제포(薺浦)란 내이포, 곧 냉이개의 한자말이라고 합니다. 웅천읍성의 오른쪽에 있으며, 역사시간에 ㅈ자주 배웠던 삼포왜관 중 하나인 제포가 바로 이곳입니다.
     
 
 
 


 





 


 ▲ 제포진성터에서 바라본 제포의 모습. 오늘날 이곳은 괴정마을이라고 불린다.










▲  개발 전의 제포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묻지마 매립으로 인해, 제포의 옛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사진 중앙부에 있는 큰 섬이 수도로서 유인도이며, 그 오른쪽에 있는 작은 두개의 섬은 무인도이나, 지금은 매립으로 인해 모두 육지와 연결되었다.








▲  제포진에 남아 있는 성벽 일부


 
  ▲  시굴중인 제포진성의 일부




 




 ▲  왜관 거주지의 북쪽 성벽 일부. 초량 왜관 사진에서 보듯이 왜관에는 배의 정박 시설과 더불어 도심에 각종 공공건물과 민간 거주지역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 외곽에 벽을 둘러 내외부인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도록 하였다. 이 벽이 그 경계선의 북쪽 벽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  내이포의 중심로. 현재 제포에서 웅천으로 가는 주도로인 이곳이 내이포 왜관 시절에도 주도로로 쓰였을 것이다.









 ▲  내이포, 곧 제포의 포구 시설. 좌측은 매립되어 바다를 조망하기 어렵다. 이곳에서 연도쪽으로 유람하는 배들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  제포의 중심가에 남아 있는 일본식 주택. 혹 왜관이 있을 시절에 지어졌던 집이 아닐까 하여 자세히 들여다 보았으나, 알 길은 없다.  아래사진에서 보듯이 제비집만이 처마 밑에 걸려 있었다. 당시의 기록에는 흙집에 띠를 올린 것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이 잇대어 있어 화재의 위험도 높았다고 한다. 실제로 성종 때에 300여호가 불타버리는 대화재가 있었다.





 














 ▲  제포의 중앙로에서 마주진 두 분의 해녀. 인근 포구에도 해녀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  괴정동(제포)의 당산나무숲. 혹 오늘날 괴정(槐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곳에 있지 않을까?






▲  당산나무 숲에 자리잡은 당집. 어떤 신을 모셨는지 보았으면 하얐으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새끼 금줄이 쳐진 것으로 보아, 올해에도 당신제를 올린 것 같았다.


 

 ▲  당산나무 숲으로 가는 길에 있는 우물. 뒤의 돌축대나 내부의 석축 등으로 보아 연륜이 오래된 우물이었다. 이 우물 위의 느티나무와 이 우믈 때문에 괴정이라는 동네 이름이 생겨났을 것이다. 다만 제포에서 괴정으로 마을 이름이 바뀐 때가 언제인지, 또 무슨 까닭으로 개명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  괴정은 안쪽에 있는 우물만으로는 수요에 충당할 수 없어 그 바로 앞에 새로운 우물을 하나 더 팠다고 한다. 현재는 우물이 두개여서 쌍우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앞쪽 우물에 명패 자국이 있는데,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궁금하다.




  




▲  우물로 가는 길가에 핀 인동초. 아무래도 이곳의 기후가 마산보다는 좀 더 따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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