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보 안녕들 하십니까 ..
안냥들 하십니까
손으로 쓴 백보 안부가 우리세상을 울리고 있다
12월18일 고려대 정경대 부근에 부착된 대자보 앞에 학생들이 모여 있다. |
별 뜻 없이 건네는 안부 인사였는지도 모르겟지만
벽보를 쓴 당사자의 마음은 우리가 읽을수가 없다
속에 숨겨진 편지에, 깊게 새겨 있던 작별의 두 글자이기도 했다.
누구나 쓰기에 누구에게나 특별하지 않았던 한마디, '안녕'이다.
그렇지만 한 대학생이 색다른 물음을 던졌다.
복수(複數) 접미사 '들'을 붙여서다.
하지만 들 하나가 많은것을 느끼게하고있습니다
학교 뒷문 옆 담벼락에 붙인 대자보를 통해 그는 물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하나의 인사말이 대한민국을 휘덮고 있다.
고려대 4학년 주현우씨(27)가 최초로 건넨 인사에 대학 사회가 응답했다.
반향이 크다. 현 시국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너와 나의 '안녕'을 질문하는 형태로 폭발했다. 무미건조했던 일상어가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울림의 언어로 탈바꿈했다.
잠잠하던 대학가에 모처럼 사회 참여 움직임이 나타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학생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 한 장으로부터 촉발된 사건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대자보 열풍이 보여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벽면을 가득 메운 '목소리'로 들끓는 대학가에
'안녕들' 화제가 된것을 보면
시작은 오프라인에서 벽보가 온라인피드백으로 확인할 수 있다.
12월10일 주현우씨가 손 글씨로 쓴 대자보를
고려대 정경대 후문 부근에 붙였다.
철도노조 파업, 밀양 송전탑 갈등 등
사회 이슈에 대한 시각을 담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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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을 넘어선 '진심' 열망
이것이 사진으로 찍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곧 이에 화답하는 성격의 대자보가 전국 각지의 대학 벽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관련 '인증샷'들 역시 온라인에서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오프라인 대자보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이렇듯 '안녕들' 대자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역을 넘나들며 점차 영향력이 증폭됐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에서 '대자보'라는 오프라인 콘텐츠 형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학내 사회운동 조직이나 학생회 단위에서 주로 게시하던 대자보가 학생 개개인의 정치·사회적 의견을 표출하는 미디어가 됐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포털,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훨씬 손쉽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세상이다. 왜 학생들은 대자보라는 번거로운 '옛' 형식에 열광했을까.
직접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은
'안녕들' 열풍의 진원지인 교내 정경대 부근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들은는 "온라인에 글을 올리면 한 번 걸러지는 느낌이 있다고 할까.
어딘가 가로막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대자보를 통해서는 읽는 사람과 좀 더 직접적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자보 열풍에 유독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또 한 학생은굳이 손으로 쓴 건 거치지 않은 소통을 하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손으로 대자보를 쓰고 있으니 더 진심 어린 글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은 온라인보다 더 직접적이고 밀도 있는 소통을 기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건 하나의 '행동'이다. 대자보가 오프라인 벽면에 가득 차는 것 자체가 어떤 의지의 표출"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온라인에서의 사회 담론 활동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학생들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이끌었던 셈이다. 이는 '안녕들' 대자보가 화제가 된 이후 '안녕하지 못한' 학생들의 오프라인 집회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달라진 대자보, 대학가의 '감각'을 바꾸다
지금 대학가를 뒤덮는 대자보는 기존의 문법과 다르다. 처음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었던 주현우씨의 대자보가 그랬기 때문이다. 시선은 사회문제를 향한다. 하지만 기존 대자보가 집단의 언어로 쓰였다면, 지금의 대자보는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출발한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라는 주씨의 문체는 전통적인 대자보 양식과 많이 다르다.
새로운 형식에 학생들은 뜨겁게 응답했다. 지금 대자보는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논하지 않는다. 건조한 어투로 차가운 논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 나타나는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자기 고백의 어조로 서술한다. 특히 '88만원 세대'의 일원으로 무한 경쟁에 시달리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는 내용이 많다. "서울역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이 사회의 안녕함을 물을 때, 나는 따뜻한 집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세상·체제·정권의 부조리를 논하면서도 '변화'보다는 '적응'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안녕했다. 그 사실이 요즘은 너무나 불편하다" 같은 식이다.
자신의 '안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곧 대학생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촉구와 함께 국정원 선거 개입, 철도노조 파업, 밀양 송전탑 갈등, 주요 학내 이슈 등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자보에는 이를 지지하거나 의견을 보태는 또 다른 학생들의 메모가 붙기도 한다. 내용은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와 상반되는 입장의 대자보도 존재하나 수는 많지 않다.
기자가 만난 대다수 학생은 "대자보를 계기로 온·오프라인에서 사회 현안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평소 관심이 없던 친구들까지도 사건의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대화의 빈도나 양이 늘어난 것 이상으로, 친구 및 선후배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의 '감각'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다. 하지만 최근 대학 사회는 이를 대외적으로 표출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운동권 같은 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 사회에서 운동권이라는 정체성은 많은 학생으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씨는 "대자보를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주변에 많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평소 사회에 관심이 있어도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얘기하면 '빨갱이' '종북' 같은 것과 엮일까 봐 생각을 얘기하지 못했다. 요즘은 대자보를 보면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느껴서 편하게 얘기하게 된다."
학생들의 말에서 최근 대학 사회의 분위기가 읽힌다. 전통적인 방식의 학내 운동 조직이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상황, 한국 사회를 휩쓴 '공안 정국' '종북 공세' 등이 맞물려 학내의 사회적 공론장이 사실상 억압되고 있다는 점이다. 막혀 있는 곳을 뚫으면 고였던 것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려는 심리적 방어막을 녹인 중화제였던 셈이다.
12월13일 개설된 '안녕들 하십니까' |
'정보 대중'이 움직이는 '21세기형 광장'
학생들은 "정치적인 얘기는 가급적 안 하려는 편이다. '빨갱이' '종북' 같은 오해가 덧씌워지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도 아닌, 색깔 공세도 아닌, 나와 너의 안녕을 묻는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자보를 붙이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사회적인 문제 제기를 안 하던 친구들도 요즘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평소엔 그런 얘기를 하면 운동권으로 보는 인상이 강했다면, 요즘은 사회에 관심이 있는 '개념 청년'으로 보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대자보가 귀환했다. 하지만 그 문화는 1980~90년대 학생운동의 전성기 시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대학생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를 전후해 학생회 중심의 학내 집단 공동체가 급속도로 해체됐다. 지금 대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개인화됐다. 또한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 환경을 접한 '온라인 키드'들이다. 이런 특성을 공유하는 대학생들이 이번 '안녕들' 현상에서 보여준 사회 참여 움직임은 여러모로 '정보 대중'이라는 개념과 맥이 닿는다.
어느교수는 정보화 사회의 대중이 형성되는 방식과 성격은 산업화 사회와 다르다고 분석한다. 산업화 시대의 대중은 하나의 중심이나 지도자에 의해 대상화되기 쉽고 자발적인 활성화 에너지가 부족하지만 정보화 시대의 대중은 다르다. "사방에 산개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하나의 픽셀로, 하나의 노드로 작용한다. 그들은 상호 연결되어 온라인을 통해 소통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수는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라는 두 영역을 빠른 속도로 넘나들면서 활성화 에너지를 높인다"는 점을 정보 대중의 특징으로 꼽는다. 오프라인 '대자보' 특유의 형식과 온라인 플랫폼의 파급력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최근의 현상과 부합한다.
파편화된 대학생들은 개인의 '안녕'을 위해 질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 밖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대자보라는 어제의 형식이, SNS라는 오늘의 도구가 그 억압된 욕망에 숨통을 틔웠다. 그렇게 '21세기형 광장'의 대중이 움직였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나직한 안부 인사였다.
이규대 기자 / bluesy@sisapress.com
위 내용은 이규대기자의 글을 보고 요약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