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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람 ..김유성 처장님 (연대사무처 펌)

아지사리 2010. 4. 7. 23:41

 

 

  우리시대의 좋은 사람 - 김유성 처장님 ^^*
  글쓴이 : 사무처     날짜 : 10-03-29 15:50     조회 : 135     트랙백 주소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야!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좋아하는 기준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기준은 삶의 등대 같은 사람, 가슴이 따뜻한 사람, 지평을 넓혀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자기자리를 소중하게 여기며 지키는 사람 등이다.
나에겐 좋은 사람,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 보니 많은 얼굴들이 스쳐가고, 김 유 성이라는 이름의 독종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선배의 얼굴이 가장 선명하게 마음에 떠오른다. 95년 1월의 어느 날,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내다 개업이라는 현실적 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온 인천의 한 호프집에서 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4살 위인 처음 보는 동문 선배였고, 같이 근무하고, 건치활동 하면서 인천에 개업시켜준다는 말에 혹해 인천에 눌러 앉은 지도 16년의 세월이 지났다.
형을 생각 할 때 떠오르는 생각들은 독종의 근성, 자신이 세운 원칙과 약속에 철저하려는 모습, 이성적 사고와 객관적 토론을 통한 한계의 인정과 개선을 부단해 해가려는 모습, 그러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형이다. 그리고 형은 내 인생의 전환기에 밑거름이 되고, 채찍이 되어 준 사람이다.

형을 알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뒤흔들었던 형의 질문들!
“너 학생이냐?”,
“네가 좋아하는 일, 해야 할 일을 죽을 때 까지 할 수 있냐?”
“개업 잘해서 치과 잘 돼야 한다!”
그때는 나름대로 나이도 먹고 컸다고 생각했는데, 형의 눈에는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흘러 형의 말을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내 인생의 나침반 같은 물음으로 자리 잡았다.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사고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사회인으로서 현실에 발을 딛고 스스로 의지를 갖고, 말이 아닌 실천을 할 수 있는가?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스스로 소중히 생각한 일에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해나갈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자기실력을 쌓는 데 철저히 하고, 돈도 많이 벌어 의미 있게 잘 쓸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각자의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저마다의 어려움을 어떻게 잘 조율하면서 극복해 가느냐가 가장 힘든 자신만의 전선인 것 같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감당하기 힘든 상황까지... 형은 나라면 견디기 힘들고 주저앉을 만한 큰 시련들을 유난히 많이 격어 온 것 같다. 젊은 시절의 교통사고, 아이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장애를 갖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임대건물에서 쫓겨나고, 분양받은 치과자리가 부도나고, 형수의 건강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힘든 내색을 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의 주어진 일과 책임들을 꿋꿋하게 해가는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는 듯했다. 형에 비하면 별것 아니겠지만 나에게도 살면서 힘든 고비가 있을 때가 몇 번 있었다. 주위에 푸념하기도 하고, 오만 인상에 어두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면서, 주위 사람이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늪에 빠져있을 때, ‘많이 힘들지 힘내라.’라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쓰윽 한마디 말만 하고 어깨를 툭툭 쳐주시고 가던 형의 뒷모습이 나를 낯뜨겁게 했었다. 여러 가지 위로보다 살아온 삶의 모습과 애정 어린 말 한마디가 사람을 뒤흔든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고민은 풀어 갈려고 하는 의지가 있으면 풀리는 거고, 움츠려 들고자 하면 한없는 의기소침과 자기방어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형은 건치 회원이고, 인천건치의 오늘이 있게 한 사람 중의 한명이다. 지겨울 만도 한 16년이 넘어서는 동안의 매주 화요일 모임! 무슨 혁명 조직도 아니고, 회의 내용도 거기서 거기일 수 있는 모임을 쉼 없이 해왔다. 모임이 지겨워 중간에 바꿀 뻔 한 적도 있었다. 본인은 어려운 사정 때문에 치과도 그만두고, 집도 서울로 이사 갔으면서 3년 동안 매주 화요일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 하면서, '일이 없고 한가할수록 더 자주 봐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는 얼굴보기도 힘들어진다'는 형의 강한 의지가 중단될 뻔 한 매주 모임을 지속되게 하였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인천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소중한 인연을 쌓게 되었는데 가능하면 평생을 인천에서 살자!''라는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다시 인천에 돌아왔다.
처음 건치 활동을 하게 되면서 형에게 들었던, 오래도록 같이 느끼며 생활하는 것과 지역과 같이 호흡하면서 살아가야 된다(1인 2단체 활동 장려)는 말의 의미와 결과를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게 된다. 대부분 모임에서 활동을 하고 임원을 맡고 연배가 차면 모임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책임을 맡는 일이 많아지고,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도하고, 지겨워서 일수도 있겠다. 인천연대활동을 하고, 부평신문사 대표로 일하고 있으면서도 형은 오늘도 변함없이 모임에 나오고, 회의가 끝나면 맥주한잔 하자고 바람을 잡는다. 한 조직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저력이 만들어지는 것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면서, 앞서 몸으로, 생활로 실천해왔던 선배들의 모습에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형이 가장 힘들어 했던 모습을 본건 희철 형을 떠나보낼 때였다. 희철 형이 부평신문사를 부탁했었고, 이를 거절하고 있던 와중에 희철 형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무척 괴로워했었다. 형은 창간 준비를 거쳐 7년째 맞는 부평신문사를 지역에서 인정하는 지역 정론지로 꾸려가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이고, 재정적으로 머리 빠지게 고민해야하고, 전망도 너무나 불투명했던 상황이었는데, 그 많은 부담은 어떻게 떨치고, 나라면 외면했을 신문사를 왜 맡았는지를 한동안 이해 못했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약속, 떠나버린 사람의 염원을 영혼의 무게로 받아 안았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형은 독종이다.
몸무게가 너무 나가 맘먹고 28Kg을 가볍게 뺀다.
신혼 때 부부간의 힘듦을 하소연하면 이혼해 버려 하면서 자기는 이혼안하며 잘산다,
술 한잔 먹고 볼링을 치는 데 내기가 걸리니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목숨 건 사람마냥 친다.
맥주와 치킨을 좋아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제한시간 30분 정해 놓고 쭉~ 길게(?)마신다.
인사말 한번 하려고 밤새 인사 글 쓰고, 거울 앞에서, 형수 앞에서 몇 번이고 리허설 한다.
토론에 임하면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수불사업 20년에 반대하는 인간들에게 이가 갈릴 만도 하건만 그 쪽의 입장도 존중해야한다고 한다.
국보법 단식은 농성장에 가서 할 일이지, 할 일 다 하며 단식하면서 사람 기죽인다.
형은.....
내가 저 나이 되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저 나이가 되면 꼭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글쓴이. 정갑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 인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에서 퍼온 글입니다


 


집짓는목수   10-03-29 15:52
저는 가끔 제가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좋고 멋있는 사람들이랑 함께 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10-03-29 17:54
훌륭한 선배를 알아보는 든든한 후배.. 우리 시대의 좋은 사람 제목도 맘에 든다.
우물   10-03-29 23:44
인생에 거울이 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합니다.
더 행복한 것은 누군가 나를 거울로 삼아 살아간다는 것일지도.
동암   10-03-30 10:10
협동처장님~ 짱~~~
내겐 너무 좋은 그 ^^

드럼은 열씨미 배우고 계신거져...
언제쯤이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매,모   10-03-31 10:56
글쓴이 역시도 처장님 못지 않은듯...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는 분!
그 선배님에 그 후배님 같습니다,
아름다운 동행 이라고 일컬어 집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송인철   10-03-31 22:14
겉으로 의사라는 직업으로 협동처장으로 봐 왓는데
후배글 보고 뒷모습을 보니  더 가까이 느껴집니다 ...

 ...한잔술에  존칭이 부담스럽다고 했던 일이 작년 어느날 .
결코 어려워하면 안된다고 맘 놓고 말 놓으시라고 하시는
일이 생각 나 더 친밀한듯합니다 .. 그래서 감사햇고요 ..
\
잘계시죠 ....
행사에 자주 참석하면 뵐수 있을진데
생활이 여의치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요 ..
다양한 하시는 일  존경합니다 ...
김유성   10-04-02 12:54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실은, 이 글을 8일 전에 읽었는데,
읽고 나서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기가 참 힘들더군요.
 
저를 그렇게 생각해 준 갑천이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 갑천이가 (다들 잘 아는 사실이죠?)
이런 글을 써서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더군요. 
'돈 시 돈이요, 불 시 불이다'라는 말도 떠오르구요...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저라는 대상보다는,
갑천이라는 사람의 깊이와
사람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항상 하는 말...
"후배지만, 진심으로 존경하는 갑천이" 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무처   10-04-05 21:47
처장님의 말투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